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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대한 토론(찬성의 반론 및 답변에 대해서!)

by 힐링타임즈 2015. 1. 28.

자살 찬성의 반론 및 답변에 대해서!








1, 자살은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풍토를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지 않나요?

→저희는 자살을 찬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살을 선택한 개인의 자율성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풍토에 따라 자살예방사이트나 각종 까페 및 단체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자살을 막을 수 있다면 최대한 막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2. 자살을 함으로써 새로운 삶을 기대하는 것은 합리적인 인간에게 현실적이지 못한 방안이라고 생각됩니다.

→흄은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주제를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는 결과주의였습니다. 그가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자살을 찬성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칸트보다도 현실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찬성한 이유는 절대적 도덕법칙에 대한 의무에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자기배려와 고통 경감을 위한 신중한 이성적 선택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3. 신적으로 지상 외에는 새로운 삶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인생을 살면서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고통을 오래 끌어야 될 만큼 깊은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부정하면서도 지상을 떠나려고 시도하는 그 순간에는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이 잇따릅니다. 그만큼의 용기와 신중한 이성판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삶’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입니다. 이 삶을 떠난다는 것을 개인이 그 현상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저희는 지상 외의 삶이 아닌 어떠한 환경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4. 만약 본인의 어머니가 심각한 뇌종양에 시달려서 안락사를 원하신다고 가정하면 본인은 어머니를 죽일 수 있나요?

→엄마의 고통을 보는 딸의 마음 역시 아픔이 매우 큽니다. 단지 그녀의 생명적 가치를 위해 가족들이 받는 모든 고통을 방관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생명의 존엄함을 추구는 고등한 동물이기에 앞서 우리 엄마의 고통 없는 평안한 죽음을 위하는 딸이기 때문입니다. 


5.칸트가 주장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다면 안락사 외의 우생학, 나치즘, 출산제한, 낙태는 모두 동의하는가?

→안락사를 옹호했지만 그것이 사회에 해를 끼치는 행위가 아니여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하지만 우생학은 개인의 우열감과 열등감을 심화시키며 사회에 불안을 고조시키고 생명의 존엄성은 자연적인 가치에 있다는 것을 간과했으며, 나치즘 역시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의 희생이 잇따랐다. 출산제한과 낙태는 개인의 가정사를 고려해야 하므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한에서 시행이 가능하다고 본다.


6.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보편의 도덕성은 없다고 주장하는건가?

→칸트는 도덕법칙은 구체적 내용이 없이 순수하게 형식만 있고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법칙이라고 주장하였다. 관찰에 근거한 객관성은 있어도, 도덕법칙은 때에 따라 적용범위가 다를 수 밖에 없는데 무조건적으로 타당한 명령의 형식을 띠는 것은 억지와 억압이라고 생각한다.


7. 데이비드 흄은 이신론자였지만 무신론으로 오해를 받아왔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의 경험주의적 태도는 흡사 창조론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화론 역시 아직까지 확실하게 증명된 바가 없다. 대중과 가장 가까운 영화매체의 진화론의 지속적인 언급이 대중들로 하여금 그렇게 믿게 하였을 뿐이다. 18C를 살던 흄은 경험하지 못한 창조론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을 뿐 감히 무신론이나 진화론을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8.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해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칸트는 존엄성의 정의를 합리적 도덕적 사유와 행동으로 본 반면 흄은 인간 의지에 반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존엄하다고 불렀을 뿐이다. 특히 흄은 이성을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하였다.


9.죽음과 고통은 중 어떤 것이 더 해로운 것인가?

→죽음이 고통보다 해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다양한 상황에서 고통의 원인, 경위, 강도 등을 측정할 수는 없지만 어떠한 경우는 죽음이 고통보다 덜 해로울 수가 있다. 육체적 고통은 환자에게 해가 되고, 판단능력이 있고 지각이 있는 환자의 정신적 고통은 지속적으로 환자를 괴롭힌다. 환자는 삶을 원하면서 신체의 장애를 받지 않는 생존과 정신적 긍정을 원하기에 자기에게 해로운 고통을 버리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영화예시


10. 살인죄(252조1항)에 의하면 안락사는 촉탁, 승낙에 의한 살인죄이다. 

→2006년 의사윤리지침(제16조,제17조)에 따르면 밀기 환자와 생명이 위험한 환자 및 퇴원을 요구하는 환자에 대한 의료 개입과 중단을 제한적으로 허용한 바 있다.

의협윤리강령(제7조)에 따르면 의사는 죽음을 앞둔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환자가 인간답게 자연스런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라고 규정되어 있다. 의사는 병을 치료하는 직업이며 동시에 죽음을 다루는 직업이다. 막중한 책임감을 무릎쓰고 타인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안락사를 시행하는 의사는 이타적인 사람이지 살인자라고 볼 수 없다.


11.기독교와 불교등에서 인생의 본래 근본적인 목적은 고난이다. 이것을 자살로 피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아닌가?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시대이다.

칸트는 자신의 감정에 따라 선을 베푸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도덕이 이기면 선한 행동을 하고 충동이 이기면 그른 일을 한다고 하였다. 



결론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마땅히 부여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존엄성이며, 자연적본능의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의지의 자유로부터 지니는 품위를 뜻한다. 의지의 자유에서의 의지란 인간의 선의지를 말한다. 즉, 존엄성이란 선의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보증서이다. 선의지란 도덕법칙에 맞는 행위를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인간은 도덕법칙을 스스로 세우고 그것을 지키려는 의무를 지닌다.

인간의 행동에 있어 감성은 항상 이성을 앞선다. 긍지, 경멸, 자만심, 경쟁심, 우울함, 쓸쓸함, 포화감, 허영심, 기쁨, 슬픔 등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수학처럼 관념적인 이성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정념과 이성의 싸움을 자주 목격하고 이성의 편을 듣고, 사람은 이성의 명령을 따르는 한에서만 덕스럽다고 주장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감성의 맹목성과 기만성은 회피해야 하지만 감성이 이끈 행위는 인간의 자연적인 자유를 행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 팀에서는 인간의 보편적이고도 본질적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자살은 억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만약 한 사람이 불치병으로 몸이 참을 수 없도록 고통스럽고 마음이 지쳐있다면 그 상황에서 도덕행위를 할 수 있을까. 아픈 환자는 도덕행위를 하지 못해서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 스스로도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황이라면 도덕은커녕 어떠한 행위조차 하기 어렵다. 몸을 겨누기 어려운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온건한 신체와 마음을 가진 모든 국민들은 도덕의지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현대시대는 청교도시대가 아니고 신에게 자기자신을 신에게 바쳐야하는 의무가 없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고통을 느껴야 할 의무가 없다. 우리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삶을 포기한 자살자를 비난할 수 없다. 도덕적의무의 자유를 가졌기 때문이다. 고통을 피하기 위한 지살은 유일한 길은 아니다. 비록 극단적이지만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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