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인 중 오디션 연구
1.
저는 사실 영화를 끔찍이 좋아한다거나, 영화 없이 못 산다던지, 내 인생의 영화를 만난 탓에 이 보다 더 잘 만들겠다는 야심이 있다는 등 영화가 너무 좋아서 영화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된 케이스는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연기를 하는 사람을 다루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연극 연출가나 매니지먼트, 혹은 연기학원 교사 같은 일이 떠올랐지요. 성장 환경과 형편의 영향도 있었을테고 외소한 몸과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도 일종 작용했는지 배우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몸뚱이 하나를 무기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연구하는 자유로운 사람들. 그만큼 자신에 대한 의지가 굳건하고 관계에 열린 사람들. 이 것이 배우에 대한 저의 첫 생각이었습니다. 연극 연출을 배워야겠단 생각으로 입시를 준비하던 중에 우연히 들렀던 부산 영화제에서 본 동유럽 영화 한 편 다르덴 형제의 <아들>을 보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그냥 흔히 길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비전문 배우들이 그 어떤 배우들보다 더 강렬하고 서글픈 인물상을 거칠게 그려내는 것을 보면서 카메라 앞에서 배우가 가진 감정과 표현 그 이상의 인간성을 드러내게 판을 펼쳐줄 수 있는 좋은 연출자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연출 전공과 연기 전공이 함께 생활하는 세종대에 들어왔고 연기 전공 친구 및 후배들과 작업 혹은 작업을 준비하기 전의 많은 이야기들이 제가 영화를 만드는 큰 에너지이자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
개인적으로, 10대에서 20대가 넘어가는 그 불온한 시기에 남을 배신하고 등쳐먹으며 자신의 생계를 이어 나가는 성장기의 주변인물들에 관심이 많았고, 그 아이들에 대한 관찰을 계속 했습니다. 중국에서 건너온 밀입국자들을 싼 값에 다른 곳으로 팔아넘기는 브로커 소년들의 이야기 <얼어붙은 땅>, 뒤늦은 30대 나이에 공익 근무에 들어와 아이들 눈치를 보며 몰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 나가는 아저씨 <복무태만>, 자신을 좋아하는 아이를 이용해 종로 게이바에 데리고 다니며 팔아넘기는 소년 <밤벌레>, 동대문 야시장을 무대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중국 동포들의 지갑을 털어 먹고 사는 <도시의 밤>의 꼬마 등등. 자신의 처지를 위해 누군가를 배신하거나 누군가를 피해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비중이 다른 작품들에 큰 편이었고 영화적인 설정과 자극보다는 그 인물을 맡은 배우가 가진 다양한 스펙트럼에 의지하는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30분 안팎의 단편 영화는 배우의 무게가 100%가 생각하는데 곧 짧은 시간 안에 그 이야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선 배우의 눈짓과 표현에 관객들이 많이 의지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리 프로덕션 때 캐스팅과 캐스팅 된 배우와 대화하고 준비하는 작업에 많은 공을 들이는 편입니다.
3.
최근 <거인>이란 장편 작품을 하면서도 마찬가지 였지만, 배우와 리딩이나 영화에 대한 비즈니스를 많이 하기보단 편한 자리에서 술을 많이 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감독이 배우에게 가장 먼저 제공해야 할 것은 함께 만드는 작품에 대한 이해나 설명 보다는 배우가 감독 앞에서 편하게 자신을 노출할 수 있도록 편한 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배우들 중에 후배가 많다보니 선배라 많이 껄끄럽고 낯을 가리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만큼 편한 대화가 오가기가 힘들어서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대중에게 알려진 배우들은 사회에서 배운 감독과 배우의 관계에 대한 강박이 또 있는지라 그들 또한 편한 관계를 만들어 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작품들에서 한 배우가 거의 모든 장면과 감정을 끌고 가야하는 경우가 많아서 배우와 연출의 소통이 쉽지 않으면 금새 영화의 만듬새에 큰 지장을 주게 됩니다. 특히, 최근에 작업한 <거인>의 최우식이란 친구는 20대 초반의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을 끌고 가야 하는 큰 비중을 맡았던 지라 서로 많이 티격태격 하면서 준비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작품에 배우를 맞추기 보단 배우가 가진 기본적인 인간미와 특성을 작품에 많이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배우와 술을 많이 먹게 되었는데 다소 긴장이 풀렸을 때 그 배우가 토해내는 진심과 트라우마, 성격과 말투에 많은 영향을 받는 편입니다. <얼어붙은 땅>의 박찬진은 찬진이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거친 얼굴과 말투에 비해 딱 그 나이같아 보이는 아이 같은 어리광에, <밤벌레>의 장유상은 초면인 관계에 낯을 많이 가리면서 별 표현없이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거나 자신을 친숙하게끔 만드는 눈빛과 태도에서, <도시의 밤>의 김희찬은 굵은 보이스와 자신 있는 연기 이면에 뜨겁게 타오르는 열등감을 많이 감추고 누르려는 모습에 영감을 얻어 그 내면을 최대한 드러내는 것에 집중하여 역할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배우의 장점을 뽑아내는 것 이상으로 배우의 단점을 장점화 시켜서 작품에 녹아내는 작업도 굉장한 카타르시스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첫 연출했던 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의 서한열 같은 경우는 다소 투박하고 영민하지 못하며 무대에 수줍음이 많고 자신감이 부족했던 모습을 장점화 시키려고 그의 화술과 캐릭터의 화술을 많이 일치시키려 노력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가족에 대한 애잔한 마음과 또다른 트라우마들을 많이 얘기 나누면서 서한열이란 사람이 갖고 있는 자기 연민과 인간애에 막내라는 캐릭터를 많이 덧 씌웠습니다.
4.
오디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민함과 순발력입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오디션 무대에서 별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열심히 준비한 모습을 어떻게 영리하게 표현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거인>이란 작품을 하면서 사무실에 하루에 많게는 100통 가까이 프로필이 들어오고 그 중에 추려 오디션을 보았지만 너무 많은 경쟁자들에 비해 준비된 역할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배우들은 자신은 열심히 준비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할 것이다라고 어필하지만 그것은 굉장히 당연한 얘기고 감독이나 스텝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영화는 결국 캐릭터 싸움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다르며 자신이 어떻게 이 역할을 해석하고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치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우선, 자유연기로 준비해 온 오디션 독백에서부터 그런 배우들은 눈에 띄기 마련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역할이 어떤 역할인지 명확하게 파악이 되어 있고 그것을 이 작품에 어떻게 적용하면 되는지의 예시를 잘 찾아온 케이스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배우들이 독백 연기를 하게 되면 어떻게든 임팩트를 주고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연기를 내뱉을 때가 많은데 그럼 다른 배우들과 차이를 둘 수가 없습니다. 영화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단순하기에 자연스런 감정과 말투를 좋아합니다. 자연스런 감정과 말투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감정과 말투이지요. 자신이 어떤 특색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파악이 빨라야 대본 분석이 그만큼 편할 것입니다. 그리고 감정을 과감하게 분출해 내는 것보다 절제가 돋보이는 세련된 연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카메라 테스트가 있는 오디션인 경우 클로즈업에서 승부가 날 때가 많은데 조용하게 자신의 감정을 끌고 간다 클라이막스의 감정을 충분한 절제로 표현 해내는 배우들을 감독들은 좋아하고 신뢰합니다. 연출과 배우의 관계는 꼭 연애와 같아서 연출로 하여금 계속 자신을 궁금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다음에 더 보고 싶고 계속 궁금하게 만드는 일종의 밀당 혹은 그 밀당을 자신있게 자기 페이스로 리드할 수 있는 용기와 과감함이 필요합니다. 대본을 외우기보단 혼잣말을 많이 해보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 연습에서 자신의 말투와 호흡을 대충 읽을 수가 있어요.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단편 영화제나 국제 영화제에 자주 가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요즘 어떤 류의 단편 및 독립영화가 만들어지고 어떤 배우들이 호응을 얻고 감독들에게 사랑을 받는지에 대한 관찰도 중요합니다. 외부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아도 그 작품들만 챙겨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오디션 준비가 될 수가 있지요. 배우는 작품을 보면 금방 다른 배우의 패를 읽을 수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영화제를 다니면서 감독과 작품 정보에 대해 습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같은 오디션을 봤을 때 감독 입장에선 내가 누군지 내가 만든 작품이 어떤 건지 아는 배우에게 더 애정이 가고 대화할 내용이 많기 마련입니다. 가만히 혼자 책상에 앉아 불안에 떨며 대본만 외우는 배우는 결국 큰 배우는커녕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는 자리마저 얻지 못합니다. 자신의 재능에 대해 의심하지 말고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 더 고민하며 꾸준히 자신에게 영감이나 자극을 줄 작품들을 찾아다니는 영민하고 추진력 있는 배우가 되었으면 합니다.
5.
20대 남자배우 연습용 추천 독백
(배우마다의 개성과 인간미가 다양하게 보여 질 수 있는 대사로 찾아봤습니다.)
* <거인> 중 최우식
영재 안돼요. 신부님. 절대 집에 가면 안돼요. 저는.
안돼요. 안돼요. 집에 가 봤자 저 책임 져 줄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구요. 집구석 있기 싫어 떠돌다가 나쁜 친구들 만나서
술 담배나 배우다 소년원 들락날락 거릴 거고 그러다 길바닥에서
신문지나 주우면서 평생 살겠죠. 신부님. 제가 그렇게 되길 바라세요?
영재 저... 선생님이 아빠 아니 원장님한테 말씀 좀 잘 드려주세요.
애가 공부가 확 늘어서 신학교 성적 맞출 수 있을 것 같다고...
조금만 더 시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고...
애를 한번 믿어 보시는 게 어떠냐고... 기숙학교 들어가면
더 집중이 잘 돼서 공부하는 데 더 수월할 것 같다고...
제가 알아봤는데... 신부 되는 애들 기숙해서 키우는 학교가
있거든요.
선생님이 한 번 만 말씀 드려 주시면...
거기 가면 선생님은 못 보지만... 그래도 원장님 눈치 안 봐도 되고. 진짜 열심히 할
수 있거든요, 선생님? 네? 부탁드려요...
영재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저 버리지 마세요... 저 성당도 진짜 열심히 나가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꼭 진짜 신부님 되서... 아빠랑
엄마랑 저 너무너무 잘 키워주셔서 너무너무 아빠랑
엄마한테 고마워 한다고... 제가 이렇게 된 거 다 아빠랑
엄마랑 이삭의 집이랑... 제가 더 잘 할게요... 오늘 일은...
저 제발 버리지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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